2017-04-15

내가 암에 걸린 이유

중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하고 나는 형을 따라 뉴질랜드로 갔다. 웰링턴 존슨빌에서 하숙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다양한 아시안들을 만난다. 숫기가 없던 나인데 영어도 못 하니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말을 걸어주면 어찌어찌 반응을 하곤 했다.

Wellington Boys College
4개월 동안 랭귀지 스쿨을 다녔고, 웰링턴 보이즈 컬리지에 4학년으로 입학했다. 학교를 간다고 해서 전혀 즐겁지 않았다. 영어를 알아듣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한국사람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외로움이 극에 달한 상황으로 기억한다.

결국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에 돌아가지 못 하고 남게 되었다. 그 뒤로 적응해서 살려고 노력했으나 역시나 쉽지 않았다.

의욕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시간을 버리고 있던 중 한국에서 온 유학생 형과 친해지고, 나는 어린 나이에 담배와 술을 시작했다. 그때가 16살 정도 된것 같다. 담배를 피면 어지럽고 기침하고... 술을 마시면 머리가 핑핑 돌고 토하고.. 그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끝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몸에서 엄청난 거부반응을 보이는데도 무시하고 결국 중독이 되어버렸다.

이때 부터 20년 동안이나 술과 담배를 쉰적이 없다. 특히 술은 마셨다 하면 만취가 되어 기억을 잃는 경우가 허다 했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해장하러 캄보디아 쌀국수 집에 가서 엄청나게 매운 고추와 곁들인 쌀국수를 먹어야만 속이 진정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토목과를 지원해서 폴리텍을 다니기는 했지만 금방 관두었고 다시 자동자 엔지니어 과정을 시작했으나 바로 또 그만두었다. 그 뒤로 독립하여 밤에는 가라오케에서 일하고 낮에는 과일가게에서 일을했다. 또한 한국에서 이민 온 분이 차린 PC방에서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Image result for georgie pie
조지파이(georgie pie)는 진리!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식습관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햄버거가 주식이었고 출출하면 언제든지 나가서 냉동 고기파이를 사먹었다.

특히 밤에는 가라오케 일이 끝나면 새벽 3시 정도에 직원들과 나와서 스트립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집에 귀가하곤 했다. 새벽 3시에 문여는 술집은 스트립바 뿐이다.

이 생활도 지겨웠을까.. 20살이 되었을 때 다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빅토리아 대학교에서 컴퓨터 싸이언스과를 전공 하였지만 역시 대학생활도 썩 건강하지 않았다. 점심은 거의 고기파이나 빵으로 때우고 또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다녔다.

26살에 한국에 돌아와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회식이 행복했다. 원래 좋아하던 술과 고기를 맘것 먹고 스트레스도 날리고... 아침까지 마시는 날도 많았다. 어떤날은 집에 기어 들어오는 모습을 와이프가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어 충격을 받고는 일시적으로 술을 줄이기는 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마신다. 3차 기본이다.

30대 중반에 와서는 확실히 술 마시는게 힘들어졌다. 아마 암 때문이라. 그럼에도 꾸준히 마신다. 난 술 좋아한다고 광고를 하고 다닌다. 사업을 하면서 술 마실 상대는 점점 더 늘어간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장암 3기 암 환자가 되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